오픈소스 소비자의 법적 권리가 확대될 것인가
- SFC vs Vizio 판결에 대하여-
삼성전자 오픈소스그룹
정윤환 변호사
지난 5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연방지방법원에서 SFC(Software Freedom Conservancy)가 Vizio를 상대로 제기한 오픈소스 관련 소송의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에 대해 SFC는 "카피레프트 라이선스 역사에서 분수령이 될 사건"이라며"GPL이 저작권 라이선스 뿐 아니라 계약적 합의의 기능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1]. 이번 판결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이러한 언급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SFC는 기업이 오픈소스 라이선스를 위반하는 경우 오픈소스의 저작권자를 대신하여 소송을 수행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이다. Vizio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SmartCast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TV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회사이다. 2018년, SFC는 Vizio가 GPL로 배포된 오픈소스를 사용하고도 소스코드 공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제보를 받고, Vizio 측에 관련 서한을 발송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Vizio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자 2021년10월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SFC가 처음 소송을 제기한 곳은 캘리포니아 주법원(State Court)이었다. 그러나 Vizio는 사건을 연방법원(Federal Court)에서 맡아줄 것을 요청하였고, SFC는 이를 다시 주법원으로 이송해 달라는 요청(Motion to Remand)을 하였다. 이번 판결은 연방법원이 SFC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건을 다시 주법원으로 보낸 것이다. 단지 관할법원을 이송한 판결일 뿐인데, SFC는 왜“분수령이 될 사건”이라고까지 하였을까?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법원의 체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미국은 연방법원과 주법원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서로 다른 사건을 관장한다. 연방법원은 헌법, 군법, 지식재산법, 안보법 등과 같이 연방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보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가족법, 상속법, 부동산 관련법, 형법 등은 주법원에서 다룬다. 이 사건에서 GPL 위반을 저작권 침해로 본다면 연방법원에서, 계약 위반으로 본다면 주법원에서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방법원이 이 사건을 주법원으로 보냈으니, GPL 위반은 저작권 침해일 뿐 아니라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SFC는 "GPL이 저작권 라이선스 뿐 아니라 계약적 합의의 기능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저작권법 위반은 저작권자(또는 위임 받은 자)만이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SFC는 그동안 저작권자의 권한을 위임 받아 GPL 위반 소송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본 건에서 SFC는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소비자로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만약 본 사건을 저작권 위반으로만 본다면SFC는 원고적격이 없어 각하 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계약법에 따를 경우에도 무조건 SFC의 원고적격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계약 당사자만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데, SFC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GPL을 계약으로 볼 경우, 계약의 당사자는 소스코드의 배포자(저작권자)와 사용자이며 이 소스코드를 활용해서 만들어진 제품의 소비자는 제3자가 될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SFC는 제3자 수혜자(Third-party beneficiary) 이론을 주장하였다.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계약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면 계약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SFC는 Vizio가 GPL 의무사항에 따라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그 소스코드를 받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송에서 또 하나의 쟁점은 특정이행(Specific performance) 청구가 가능한지 여부이다. SFC는 Vizio에 금전적 손해배상이 아닌 소스코드의 공개 만을 청구하였다.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나 계약 위반에 대한 구제는 모두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이루어 진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금전적 손해배상 만으로 구제가 어려운 특별한 경우를 대비해 별도의 구제 방안을 두고 있다. 특정이행이 그 중 하나이며, SFC의 소스코드 공개 요청이 이에 해당한다.
이번 판결은 연방법원에 관할권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원고(SFC)의 주장이 저작권법에서 다루는 범위 내의 권리라면 연방법원 관할이 되지만, SFC가 주장한 제3자 수혜자로서의 권리와 소스코드 공개 의무 등은 저작권법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주법원으로 환송한다.”라고 판시하였다. 아직 Vizio가 GPL을 위반하였는지, 만약 위반하였다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SFC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만약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 금전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특정이행에 해당하는 소스코드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판단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SFC는 이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일 뿐이며, 아직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향후 소송에서 SFC의 주장이 모두 인정된다면 오픈소스 진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기업들에게는 오픈소스 라이선스 준수가 더욱 강하게 요구될 것이다. 저작권자가 아닌 일반 소비자에게도 오픈소스 라이선스의 의무 이행을 청구할 권리가 생겨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금전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생길 수 있다. 소비자의 권리는 확대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픈소스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오픈소스의 확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오픈소스 관련 법률 지형의 판도를 바꿀 “분수령"이 될지 앞으로의 소송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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